III. 히바쿠샤 범주의 경계 구성과 통제
4. 소결: 정책의 장에서 과학·정치·관료제의 상호작용과 굴절
일본의 원폭의료법 제정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여느 전쟁피해자들과 차별을 둘 수 없 다는 여론에 밀려 있었던 원폭피해자들에 대해 방사능의 피해, 즉 피폭으로 인한 피해의 특 수성을 들어 정당화된 것으로서 일본 원폭피해자원호의 제도화, 즉 일본원폭피해자원호 정 책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이 정책의 도입 과정에서 등장한 ‘히바쿠샤’라는 용어는 향후 이 정책의 진행 방향을 잘 보여준다. “피폭자건강수첩의 교부를 받은 자”라고 정의된 ‘히바 쿠샤’의 법적 규정은 ‘히바쿠샤’라는 용어가 단순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를 지 칭하는 한 차별화된 이름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식적인 행정관료제적 심사 절차로 그 자 격을 판별하는 이른바 ‘국가로부터 인증 받은 공식적 자격’을 상징하는 것으로 틀 지워져 나가기 시작한다. 또한 ‘피폭자건강수첩’ 즉 이른바 ‘테쵸’ 혹은 ‘수첩’을 교부받은 자가 곧
‘히바쿠샤’라는 것은 이전까지 국가에게 피해를 보상할 것을 요구해왔던 원폭피해자들이 이 제도화된 피해자지원의 형태에 따라 자신들의 수급 자격을 스스로 국가에 증명하도록 요구 받는 것이기도 했다.
원폭의료법 제정에서 새롭게 탄생한 이 히바쿠샤라는 자격 범주의 정치적 의미는, 그것 이 원폭의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직면한 도덕적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의 딜레마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는 Todechini(1999)의 지적과도 일치한다. 그녀는 일본 정부가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히바쿠샤의 존재에 대응함으로써, (한국원폭피해자들에게는 식민지배의 문제를 포함해서) 전쟁의 역사적 책임에 대한 도덕적 성찰은 지속적으로 배제해 나갔다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원폭의료법의 행정관료제적 실행 속에서 히바쿠샤의 고통은 또 하나의 생물학적 상태로 전환되고, “원폭의 피해”는 그것을 초래한 행위자가 없는 하나 의 사건이 되어버리며, 히바쿠샤의 자격심사 과정은 원자폭탄의 경험의 역사적, 정치적 이 해에 관련된 핵심적인 질문들을 억압한다.
본 장에서 얻은 또 다른 결론과 연구 과제는 이 히바쿠샤의 경계 구성과 통제라는 측면 에 있어서 과학 연구의 역할과 성격이다. 원폭피해자구호정책에서는 방사능의 피해에 대한 지원이 핵심이 된 만큼 피폭의 경계를 한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전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에 관한 과학연구들이 피폭의 범위를 규정한 방식과 그 결과로서 폭심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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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으로 하는 동심원 지도는 피폭 연구에서 중요한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여러 판단의 근 거가 됐다. 그런 점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독립된 우크라이나에서 방사능에 노출된 특정한 “위험에 처한” 인구집단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과정을 새로운 시민권의 등장과 시장 경제로의 전환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페트리나의 연구는 본 장의 결과와 비교할 만하다. 역 사적으로 보면 체르노빌 이후의 일련의 흐름은 방사능 피폭의 인체 영향에 대한 과학적 앎 의 가능성이 붕괴하는 가운데서 피폭자라는 새로운 자격의 범주가 법적, 제도적으로 출현한 과정이다. 그러나 Petryna도 지적하고 있듯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 또한 히로시마나 나가사 키와 마찬가지로 여러 요인들에 의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그 재난의 장기적 건강 영향에 대 한 결과를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 사고의 규모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확실 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Petryna, 2004:254).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권리들은 그 근거로서 피폭의 인체영향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과학연구들−그 중에서는 히 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에 대한 인체영향 연구를 기반으로 조성된 연구가 많이 있 다−이 인용되고 과학자문기구들의 정당화 작업이 이뤄지며, 그 과정에서 이러한 연구의 체 계적이고 본질적인 결함들이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페트리나는 방사능 피폭의 위험을 계량화하려는 과학지식들, 전문가들, 국제 기구 등과 같은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시장경제 로 진입하는 독립국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레짐의 본질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체르노빌의 경우 인체 피폭량 측정의 가 장 기본적 요소로 채택된 것은 염색체 변이 증가에 기반한 피폭량(dose burden) 측정 방법 이었다는 점이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이곳의 주민들에게 혈액 내 염색체 변이 정도나 방사 선 활성도(radiation activity), 방사선 피폭량 등과 같은 용어가 매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연유다. 이들의 삶에서 생명과학이나 의학적 개입은 변호사와 사고 피해자들이 체르노빌 사 고로 인한 방사선 질병의 맥락에서 적절한 복지 기금을 받아내고 의료 처치를 협상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된다. 인체 피폭량을 측정하는 것과 인체의 피해에 대한 의학적 판단은 피폭자 지위 인정과 보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Petryna, 2004:251).
피폭의 인체영향을 생물학적으로 식별하는 일이 갖는 이러한 불확실성은 히로시마와 나 가사키의 원폭피해자들에게서 더욱 심각했다. 원폭 투하 직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이 루어진 여러 과학적 연구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실제 인 체영향을 생물학적으로 식별하는 것은 켈로이드와 같이 외상을 통해 진단이 가능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불가능 혹은 무의미한 상태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일본의 원폭피해자구 호 정책의 장에서 히바쿠샤라는 범주로 포함되는 자격의 통제, 즉 히바쿠샤를 판별해 피폭 자건강수첩을 발급하는 절차에서 기억 그리고 그것의 발화된 형태로서의 문서화된 진술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하 지만 히바쿠샤의 통제 과정에서 기록과 문서, 기억이 중요한 매개가 된 점이 피폭자 범주의
경계를 구성하고 통제하는 데 있어 과학 연구의 무용(無用)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후 일본에서 원폭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공동연구, 그리고 일본의 독자 적인 연구에서 원폭피해자들의 기억과 기록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과거의 실재를 발언했기 보다는 상호 간섭적이었다. 또한 피폭자의 신체에 대한 국가의 관료제적 통치 속에 편입된 과학 연구의 결과들은 관료제가 요구하는 각종 기준들로 재설정되어 고체화되고 표준화되 었으며, 원폭피해자들의 기억과 기록들도 이러한 고체화된 지표들과 끊임없이 비교 계량되 어야 했다. 물론 이러한 과학 지식은 단순히 국가 혹은 정부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서만 기능하지는 않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들 운동은 논쟁적인 과학 연구 들 속에서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 나가고 있 다. ‘원폭체험자’와 ‘원폭증’ 인정 소송에 관한 여러 주장들은 ‘피폭’과 관련된 정부의 여러 기준들을 ‘과학의 진보를 무시한 극단’으로 비판하면서 새로운 과학 연구의 지식들을 인용 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받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히바쿠샤의 경계 구성과 통제에 있어 과학과 정치의 상호 간섭의 형태는 단순히 과학이 정치에 영향을 준다거나 혹은 정치가 과학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 악할 것이 아니라 이 둘의 결합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변형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과학과 정치의 ‘경계 없음’이 아니라 각각의 장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구성된 경계’와 그 안에서 정당성을 갖는 특수한 논리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전후 원폭피해자에 대한 과학 연구가 피폭된 신체의 실재를 과학적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 번역은 항상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항시적인 과학 연구의 한계는 연구자들에게는 끊임없는 도전 의식을 불어 넣고, 의미 있는 논쟁들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러한 논쟁적인 과학지식 가운데서도 특정한 결과들이 관료제적 틀로 포함되고 기준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과학 연구의 진행 논리 및 속도와는 또 다른 다른 방 식으로 전개된다. 본 장의 3절의 예에서 보았듯이 원폭증 인정에 있어 역치와 기준 확률의 문제는 항시적으로 불확실성을 내재할 수밖에 없는 과학 지식들이 명시적이고 확정적인 행 정관료제적 통제 기준으로 결합하는데서 보이게 되는 경직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정책의 ‘장’에서 과학과 정치의 논리가 행정관료제적 절차에 맞추어 굴절되며, 특히 경 직화되고 고체화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편 한국원폭피해자들의 등장은 피폭자 범주의 또 다른 측면으로서, 시정권적 경계를 드러낸다. 4장에서는 해방 후 한국으로 귀환한 한국원폭피해자들의 사회적 결집 과정과 피 해 구제 운동의 방향을 살펴보고, 이들이 일본의 원폭피해자구호정책에서 상정하는 ‘히바쿠 샤’가 된다는 것이 어떠한 정치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