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히바쿠샤 범주의 경계 구성과 통제
2) 특별 히바쿠샤와 원폭증 논쟁의 의미
앞 절에서는 저선량피폭에 대한 과학 논쟁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적으로는 그
‘실재’를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히바쿠샤라는 경계 밖에 머무르는 원폭체험자들에 대해 서술 했다. 그런데 원폭체험자들로부터 히바쿠샤를 선 그은 잔류방사선 문제는 히바쿠샤들 사이 에서의 선 긋기에서도 유사한 역할을 했다. 히바쿠샤라는 이름으로 테를 두르고 있는 범주 였지만, 그것은 제도적으로 하나의 단일한 생물학적 상태를 일컫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폭의료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 후생대신은 이 법이 히바쿠샤의 건강상태가 의사의 정 밀한 관찰지도를 필요로 하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특히 “불행발병자 74) 2012년 8월 5일 히로시마대학 평화센터 주최 <원폭의 남아 있는 문제들>에서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不幸発病者)”에 대해서는 국가가 의료를 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다 (제26회 일 본 통상국회 중의원 사회노동위원회 회의록 제11호). 그의 이 발언은 앞 절에서 설명한 바 와 같이 ‘건강한 자와 병자의 중간’ 정도에서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것이 특징인 히바쿠샤들 중에서도 돌연 발병하는 경우에 그에 대한 적절한 의료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것을 설 명하는 것으로서 당시에는 히바쿠샤가 되더라도 모두 의료적 조치를 받는 것이 아니고 요 의료상태에 놓여야만 의료적 지원을 받게 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시 이들 ‘불행발병자’에 대해서만 의료적 지원을 한다는 것은 규모가 너무 작고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그 취지는 법 시행 3년 후 히바쿠샤 가운데서도 의료 와 생활면의 구호 조치가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한다는 “특별피폭자제도”의 창설로 이어졌 다. 특별피폭자 제도는 피폭자들이 다량의 방사능을 쪼인 결과로 얻게 된 ‘이른바 원폭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됐다 (被爆者援護法令研究会,2003:202) 따라서 이 제 도는 앞서 ‘요의료상태’에 놓인 이들에게 건강 진단 이외에 특별피폭자건강수첩을 교부하고
‘이른바 원폭증’ 이외의 일반질병도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비로 지원한다는 방침이 세워 졌다. 또한 원폭의료법에 의해 치료의 필요성이 인정된 피폭자는 치료기간 동안 일정 금액 의 의료수당도 지급받게 되었다 (広島市衛生局原爆被害対策部編, 1996:109).
하지만 이 특별피폭자 제도는 그 인정 기준과 지원 규모 등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 속에 놓이게 된다. 이 '특별' 히바쿠샤와 '일반' 히바쿠샤라는 구분은 히바쿠샤의 경계가 논란이 된 것 이상으로 끊임없이 그 경계를 두고 논란을 일으키며, 그 경계를 침식당했다. 국내 정 치적 상황과 더불어 그 경계 또한 꾸준히 확대되어 갔다.
예를 들어 특별피폭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던 폭심지 2km기준은 2년 후인 1962년에 3km로 확대된다. 입시자로서 특별피폭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도 완화되어, 기 존에 “직접피폭자이면서 2주 이내에 폭심지 2km 이내의 지점에 들어갔던 자”에서 “직접피 폭자 혹은 입시자(2주 이내에 2km 이내의 지점에 들어간 자)”로 되었다. 특별피폭자 인정 범위는 이후 점차적으로 확대됐다 (被爆者援護法令研究会,2003).
마을 단위의 인정 범위도 확대되어, 1965년에는 피폭 후 3일 이내에 폭심지에서 2km 이 내에 입시했던 경우 및 그 태아로 조건이 확대되었고, 특히 기존의 동심원 위주로 특별피폭 범위를 지정했던 것에서 행정단위로 피폭 범위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히로시마시의 경우에 는 애초 인정 범위에서 외곽에 위치한 마을들이 추가됐고,75) 1972년에는 히로시마 시 외의 행정단위들이 속속 추가됐다 (広島県, 2011).76) 나가사키시 또한 1971년, 73년 폭심지역 자 체가 확대됐다.
75) 新圧町、三滝町、山手町、己斐町、古田町、庚午町、三篠本町4丁目、安佐郡 祇園町 중 長束、西原、西 山本 (広島県, 2011)
76) 草津東町, 草津浜町, 草津本町, 安佐郡 祈園町 중 東山本, 北下安, 南下安, 東原이 추가된 지역들이다 (広島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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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자폭탄피폭자에 대한 특별조치에 관한 법률」(1967년 제정) 이후에도 특별피 폭자와 일반피폭자 구분에 대한 피폭자들의 불만이 지속되었고, 이에 대한 폐지 운동도 거 세졌다. 결국 1974년 6월 특별조치법 일부가 개정되어, 같은 해 10월 1일부터는 기존에 일 반피폭자로부터 특별피폭자를 구분했던 것을 폐지하고, 피폭자건강수첩을 발급하는 것으로 피폭자 관련 자격을 일원화했다 (広島県, 2011:31).
특별피폭자제도가 폐지되기는 했지만 그 취지는 계속 남았다. 1994년 12월 기존의 원폭 의료법과 원폭특별조치법이 폐지되고 이 두 법이「원자폭탄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관한 법 률」(이하 피폭자원호법으로 약칭)로 통합되었을 때, 특별피폭자제도는 ‘원폭증 인정 제도’ 로서 그 맥을 이었다.
후생노동대신은 원자폭탄의 상해작용에 기인하여 부상 혹은 병이 걸려, 현재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태에 있는 피폭자에 대해 필요한 의료의 총부를 행한다. 단, 해당 부상 혹은 병이 원자폭 탄의 방사능에 기인한 것이 아닐 경우는 그 자(者)의 치료능력이 원자폭탄의 방사능의 영향을 받 은 것 때문에 현재에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태에 있는 경우에 한한다. (일본 <원자폭탄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대한 법률> 제10조)
위 원폭원호법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이 ‘원폭증 인정 제도’는 피폭자건강관리수첩 을 교부받은 이들 중 원자폭탄으로 인한 부상이나 병에 걸린 경우 혹은 그에 기인하지 않 은 병에 걸렸더라도 그것을 치료하는 능력에 있어 방사능의 영향을 받아서 현재에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태인 경우에 후생노동대신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의료의 총부(인정을 받은 병 에 대해 무료로 치료를 받는 것)나 의료특별수당의 지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77) 이를 좀 더 전문적으로 해석하기에는 첫째, 히바쿠샤가 원폭의 방사선에 의해 병이나 상처 가 났다는 것, 혹은 치료능력이 원폭방사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야 한다는 점78)(이를 ‘방 사선기인성’의 요건이라 부른다), 둘째, 원폭방사선에 의해 그 병이나 상처가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를 ‘요치료성’의 요건이라 부른다)이어야 한다 (伊藤直子·田部知江子·
中川重德, 2006).
이처럼 원폭의료법이 도입되던 초기에 비해 원폭증 인정 제도는 좀 더 정교해졌지만, 위 에서 정의된 것처럼 원폭증 인정문제는 결국 원자폭탄의 상해 작용이 히바쿠샤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어떠한 증상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원자폭탄의 영향인 77) 2012년 현재 원폭증인정을 받은 경우에 받을 수 있는 의료특별수당은 약 13만 엔으로 일반 건강관리
수당 3만 엔보다 4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78) 원폭의 방사선에 의해 생겨난 병이나 상처는 그 자체로서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하는 등에 영향을 미쳐 피폭자가 가진 병이나 상처를 치료할 능력이 떨어지는 상태를 따로 보고 있 다. 예를 들어 원폭으로 인해 다리를 잃은 사람이 후에 암 등에 걸렸다고 했을 때, 암은 암대로 원폭증 인가의 여부를 판별 받아야 하고, 치료할 능력은 원폭으로 인한 다리의 장해로 생계가 어렵다든지 해 서 암(방사선에 의한 영향인가와 상관없이)의 치료가 어려워졌다와 같이 각각 따로 판별된다.
가를 다시 판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전제에 서 있다. 따라서 이 제도에서 가장 중요 한 것은 히바쿠샤가 겪는 병이나 부상, 치료능력이 ‘원자폭탄의 상해작용’에 기인한 것인가 를 판별해, 그에 대해 차등 지원하는 것이다. 즉 이 후생대신이 인정하는 ‘원폭증’을 앓는 히바쿠샤는 앞서 특별피폭자 제도에서 방사능의 반발성 영향으로 인해 ‘불행발병한 자’로서 현재에 ‘요의료’ 상태에 놓인 히바쿠샤의 또 다른 해석의 버전이다. 이처럼 특별피폭자 제도 나 원폭증 인정 제도는 하나의 범주로 엮인 히바쿠샤라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는 분명히 원 폭의 신체 영향에 있어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수립된 것이다. 이 특별피폭자제도 나 원폭증 인정제도는 ‘히바쿠샤’여도 다 같은 ‘히바쿠샤’는 아니라는 것을 제도적으로 확증 시켜 놓은 것이다.
그런데 히바쿠샤에 대한 제도적 차등지원을 원칙으로하는 특별피폭자제도나 원폭증 인 정 제도 모두에서 그 경계를 두르는 작업은 다시 피폭자 범주의 경계를 구성하는 것과 유 사하게 특정한 구역, 즉 폭심지로부터의 거리라는 일률적인 기준이 적용됐다 (広島県, 2011:30). 예를 들어 특별피폭자 제도 같은 경우에는 이를 1) 폭심지에서 2km 이내에 있었 던 자와 그 태아, 2) 원폭의료법 제8조 1항에 의해 치료인정을 받은 자, 3) 원폭투하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양 시 및 그 인접 지역 내에서 직접피폭당한 자 중 투하 후 2주 이내 에 폭심지에서 2km 이내의 지역에 들어간 이들로 규정했다. 물론 이 특별피폭자제도에서는 이러한 기준과 함께 거기에 “의사의 진단의 결과 조혈기능장해, 간장기능장해, 악성신생물, 내분비계의 장해, 중추신경의 결함손상, 순환기계의 장해, 신장기능장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가 우선 대상”이라는 규정이 덧붙여지긴 했으나 실제로는 피폭지가 어디인가가 가장 핵 심적인 판단기준으로 작용했다.
원폭증 인정 제도에서도 이러한 기준이 대체로 유지됐다. 다만 원폭증 인정 제도는 특별 피폭자제도에 비해 피폭지로부터의 거리와 피폭당시의 연령에 따라 그 병에 걸릴 확률이 피폭선량에 따라 훨씬 정교하게 세분화된 것이 그 특징이다. 특히 폭심지로부터의 거리와 연령에 따른 ‘원인확률’이라는 것은 '고도의 통계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 ‘특징이 없는 것이 특징’인 ‘이른바 원폭증’의 확률을 일련의 수치로서 제시함으로써 하나의 표준화된 척도로서 기능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 ‘이른바 원폭증’을 판단하는 정책적 기준이 되었던 ‘심사 방침’의 성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1년 후생노동성은 질병·장해인정심사회운영규정(2001년 2월 2일 질병·장해인정심사회 결정) 제9조의 규정에 근거해 원폭증 인정에 관한 심사의 방침을 마련하기 위해 과학자문위 원회를 꾸려 그 판단의 근거로서 ‘원폭증 인정에 대한 심사의 방침’(이하 심사방침)을 세운 다.79) 심사 방침에서 규정한 주요한 사항은 ‘방사선 기인성’과 ‘요의료성’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 그 가운데서도 방사선 기인성의 판별기준을 마련했다는 것이 이 심
79) http://www.mhlw.go.jp/shingi/0111/s111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