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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 이주의 규모

국제아동 입양 아동의 통계는 해당 아동이 반드시 수령국 이민법에 의한 입국절차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하게 집계되어 왔다. 초 기의 국제입양 추세는 미국과 주요 수령국의 비자발급통계에 대한 연구 조사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110) 2000년대 이후에는 헤이그국제사법회 의는 체계적으로 수령국과 송출국으로부터 통계를 수집하고 관리해오고 있다.111)

1960년부터 70년대까지 약 20여년간은 한미 양국 간의 국제입양 관련 통계로 전반적 추세를 설명할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 이민국의 고아입 양 비자 발급통계와 한국 입양기관의 실적통계가 기반이 된다.

미국의 1948년 난민법 상 고아입양쿼터 배정의 시작은 앞서 설명한

109) Id., Young (2012) p.67-68.

110) Weil (1984), supra note 60; Kane (1993), supra note 4 등이 대표적이다.

111) 헤이그국제사법회의 홈페이지 (www.hcch.net) 의 ‘입양 (adoption)’의 ‘통계 (statistics)' 부분 참조.

유럽 난민 아동을 위한 것이었다. 이 쿼터배정을 위한 마지막 조치였던

1957년『난민법』은 한국 혼혈아동에게 3,701개의 비자쿼터를 배정하여

이들이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이 숫자는 당시까지 미국의 고아 비자에 배정한 총쿼터 10,937명 중 34%를 차지하는 규모였다.112) 유럽 아동의

입양은 1948년부터 10년 가까이 다수 송출국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었

고, 한국 아동은 단일 국가에서 단기간 동안의 조치였음을 생각해 볼 때, 한국아동의 미국입양이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후 미국은 1961-1975년 15년 동안 전세계 34,568명의 고아에게 입 양목적의 입국비자를 발급했다.113) 이 중 한국 아동이 42.5%인 14,684명

이었다.114) 1976-1981년 5년 동안에 미국은 이전의 15년간의 전체 입양숫

자보다 많은 35,229명을 외국으로부터 입양했고, 이 중 한국아동은 54.7%인 19,283명이었다.115)

한국통계를 보면, 1961-1970 동안 7,275명, 1971-1980 동안은 48,247명 이 외국으로 입양되었다.116) 미국 통계와 한국통계를 함께 고려해 보았 을때, 기준 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1961-1980년까지 20년 동안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아동의 숫자는 3만3천9백여명이고, 한국이 외 국으로 입양을 보낸 숫자는 5만5천5백여명으로 약 2만명의 차이가 있다.

이는 한국이 미국 외 유럽 각국으로 입양 보낸 아동들의 숫자라고 할 수 있다. 1960~70년대 전세계 국제입양의 추세와 규모는 한국과 미국의 관 련 통계로 대부분이 설명된다.

1980년부터 89년까지 10년간은 전 세계적으로 국제입양의 양상이 급 격하게 변화한 시기였다. Kane은 주요 수령국 14개국의 비자발급 통계

112) Weil (1984), supra note 60, pp.285.

113) 이 기간의 비자발급은 쿼터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 이민법상 입국 자격으로 규 정된 ‘orphan' 인정에 의한 것이다.

114) Weil (1984), supra note 60, p.283.

115) Id., pp.296-287.

116) 변용찬・이삼식・김유경, 『우리나라 입양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 원, 1999), p.56, 보건복지부 내부자료 재인용. 한국은 송출국 중에 자국에서 입양이 나간 아동의 숫자를 초기부터 매우 정확하게 관리하고 있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대부분 송출국은 자체적으로 아동의 국제입양의 통계를 확보할 능력이 없고, 입양국 에의 입국통계를 통해 파악하는 구조이나, 한국은 주요 입양기관의 통계를 확보하는 것으로 1950년대부터 정부기관이 이 숫자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를 분석하였으며, 이 숫자는 전체 국제입양의 90% 이상을 포괄하는 것 으로 파악되었다.117) 이 연구에 의하면 1980~89년까지 국제입양의 규모 는 약 17만~18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70년대에 비해 62%가 증가한 숫 자였다.118) 이 시기의 국제입양 아동의 출신국은 아시아가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그 비중이 낮아져, 81년 73%에서 89년 47%가 되었다. 80년 대 후반에 남미의 비중이 20%에서 37%로 높아졌다. 한국은 그 아시아

비중의 77~55%를 채우고 있었다.119) 이 연구결과를 분야별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 국제입양의 양상

(1) 수령국의 증가

1980년대 주요 수령국은 미국, 캐나다, 호주, 프랑스, 스위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영 국,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등의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었다. 미국 외에 유 럽국가들이 수령국으로 가세하였으며, 이들의 국제입양 수요는 지속적으 로 증가하였다. 국제입양 규모가 확대되는 것은 송출아동 수의 증가가 주된 요인이다. 아동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구성에는 좀처럼 변화가 없었 다. 각 수령국이 받아들이는 입양아동의 숫자만 급속하게 증가할 뿐이었 다.120)

1980년대의 급속한 아동의 국제입양의 팽창은 국제입양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절차와 인프라가 확립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각국 정부는 국제입양에 대한 정책에 따라서, 국제입양 아동의 수령에 적합한

117) Kane (1993), supra note 4, p.324. 이 14개국은 호주, 프랑스, 스위스, 핀란드, 스 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미국, 캐나다(퀘 벡) 이다.

118) Id., p.327.

119) Id., p.328.

120) Id., p.324, 이 수령국의 구성에는 2차대전 직후에는 송출국이었던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들도 가세했음을 보여준다.

이민법제와 입양법제를 마련한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절에서 논의하도록 하겠다.

(2) 송출국의 확산

국제입양 규모의 확대는 송출국의 확산에 기인한다. 70년대 까지 주 요 송출국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 집중해서 18개국에 불과했다.121) 1980년대에 송출국의 숫자와 구성은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80년대가 시 작할 시기에는 20여개국 정도였으나, 89년에는 63개국으로 증가했다. 모 든 송출국이 대규모로 아동을 내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이 기간의 국제 입양의 90%는 10개국의 출신 아동들이었다. 그 10개국은 한국, 인도, 콜 롬비아, 브라질, 스리랑카, 칠레, 필리핀, 과테말라, 페루, 엘살바도르였 다.122)

(3) 영유아의 이동

입양되는 아동의 특징은 국제입양의 ‘시장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양부모들이 선호하는 어리고 건강한 1~2세 미만의 영아들이 대부분이었 다. Kane은 1980년부터 89년까지의 국제입양을 분석하면서, 이 기간동안 17~18만명에 이르는 건강한 영아들이 대규모로 이주하는 현상을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영아기에 부모의 친권에 문제가 생겨서 입 양대상 아동이 되는 것은 전쟁과 재난과 같은 특별한 위기상황이 아닌 한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Kane은 이러한 아동 들이 해외입양을 위해 ‘수출’되기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 문을 던진다. 영유아기의 아동이 대규모로 국외로 이송되는 현상이 긴급

121) Weil (1984), supra note 60, p.286-287. 중국 (이 시기의 중국은 주로 대만을 지칭 한 것), 인도, 일본 (일본은 한해 10~30명 정도), 한국, 필리핀, 태국, 베트남, 멕시 코, 자마이카,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에쿠아도르, 페루 등, (자료출처: U.S. 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Service 재인용).

122) Kane(1993), supra note 4, p.329.

위기 상황이 아닌 일부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진단이었 다.123)

1980년대 후반 주한 미 대사관에서 한국 아동의 미국 입양을 위한 비 자발급을 담당했던 미 INS124) 이민비자 담당 영사인 Ackeman은 한국에 서 입양이 ‘비즈니스’가 되어버렸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한달에 500 명의 영아가 입양대상이 아동이 되는 것은 아동의 복리를 위한 목적으로 는 설명할 수 없는 비정상적으로 많은 숫자이기 때문이다.125)

. 이 시기 국제입양에서 한국의 위치

Kane의 연구의 목적은 80년대 국제입양 현상을 전세계적으로 분석하 는 것이었지만, 한국을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은 이 기간 전체 국 제입양의 60%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입양을 줄이면, 주요 수령국들은 남미 등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송출국들을 찾아내었다. 호주, 덴마크는 한국아동이 50~70%, 미국은 한국이 44~62%, 프랑스, 노르웨이 는 한국아동이 40~57%를 차지했다.126) 한해 출생 아동 총수 대비 국제 입양된 아동의 숫자의 비율을 의미하는 입양율에 있어서도 이 시기에 한 국은 압도적으로 높았다. 다른 송출국들이 대체로 0.01% 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1%에 까지 이르는 매우 예외적인 양상을 보여주었다.127)

수령국들 중 입양아동의 숫자로는 1위는 미국으로 77,606명의 아동을 입양했고, 다음으로는 프랑스 18,501명, 스웨덴 15,788명, 네덜란드 11,525 명이다. 그러나 자국 출생아동수와 외국에서 입양한 아동의 수를 비교하 는 입양율128)로 보면, 최대 입양국가는 노르웨이 (1.10%), 스웨덴

123) Id., p.336.

124) 미국 이민국, 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Service.

125) Rothschild (1988), supra note 6. 보도에 따르면, 그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한달 에 500명의 아기는 단지 인도적인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지나치게 많은 숫자 이다. 입양이 비즈니스가 된 것이다. 친부모로부터 아동을 사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 를 불편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126) Kane (1993), supra note 4, p.335.

127) Id., p.336; 한국의 국제입양의 최고치를 보였던 1985년 사법연감에 의하면, 총 출생 신고된 아동은 약 85만명이고, 그 해 국제입양된 아동은 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8,837명이다. 한 해 태어난 아동의 1% 이상이 해외로 입양되었던 해이다.

(0.94%), 덴마크 (0.85%)이고, 미국은 0.2%였다.129)

다른 송출국과 비교해 보아도, 한국의 아동송출의 전체 규모와 출생 아동수 대비 비율은 이례적으로 높다. 이러한 통계는 한국의 독특한 입 양법제가 야기한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해당 법제의 구체적 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상세하게 논하겠다.